• 블로그

    페이스북

    유투브

  • 메인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맵

도시빈민 선교(청계천)
교회가 설립될 당시 청계천 제방과 중랑천 제방 일대에는 1만 2천여 세대, 6만여명의 빈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 청계천 빈민촌에 1971년 10월 3일, 장로회신학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던 김진홍 목사가 김종길, 김영준, 김인옥 등과 함께 활빈교회를 세웠습니다. 1972년, 활빈교회는 청계천 판자촌 내에서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송정동 판자촌 주민회'를 조직하고 지역 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시도하였습니다. 1974년에 주민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배달학당'을 설립하고 지역 내 청소년 56명을 모집하여 야간 중학과정의 교육을 시작하였고 탁아사업을 위해 '배꽃 어린이 집'과 '장미 어린이 집'을 설립, 운영하였습니다. 지역 내의 청소년 110명을 대원으로 '송정동 판자촌 주민 자활회'를 조직하여 넝마 주의, 폐품 재생산, 식품가공 등의 일을 하였고 의과대학생, 간호대학생과 약대생들을 중심으로 '송정의료봉사회'를 조직하고 주민의료 봉사활동을 실시하는 등 활발한 빈민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74년 1월 17일, 김진홍 목사는 정치문제에 관련되어, 대통령 긴급조치 제 1호 위반으로 군사재판에서 15년의 선고를 받아 복역하였으나 13개월 후, 대통령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습니다. 1975년 6월,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청계천 판자촌 지역 전체에 철거령이 내려졌습니다. 도시 빈민 선교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청계천에서 시작될 당시의 사진입니다. 청계천 복계천 옆에 판자집으로 구성되어진 빈민가는 그 상황이 매우 안좋았습니다. 변변찮은 의료시설조차 없었던 청계천은 오갈데 없는 이들이 제일 마지막으로 선택하던 마을이었습니다.



1973년 청계천 판자촌 화재. 60-70년대에는 유난히도 판자촌에 화재가 잦았다. 화재는 대개 겨울철에 발생했기 때문에 이재민들의 고통은 더 심했다.
그리고 '철거'라는 당국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었기에 판자촌의 겨울은 유난히 추울 수 밖에 없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Wake Up The Dawn] 이라는 영화의 장면입니다. 사랑과 희생정신이 투철했던 주인공 목사의 수난과 삶을 그린 종교 드라마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재단법인 두레원의 이사장이신 김진홍 목사님의 동명 신앙 수기를 영화화 한것으로 그 당시 청계천 사정을 유감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